모든 것과 아무것도

최희승(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성실하면서도 담백한 화면, 오랜 시간을 보낸 듯하면서도 얇은 표면이 만들어 내는 양가적인 감성은 그동안 내가 전현선의 회화를 보며 느낀 공통적인 특징이다. 캔버스에 드문드문 놓인 산이나 열매, 나무 등은 그가 인터넷에서 수집한 이미지들을 다시 그림으로 재현한 것인데, 인터넷 이미지가 그림이 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뻣뻣함을 수채화의 매체적 유동성을 빌려 마치 젤라틴 같은 몽글몽글한 상태로 보이게 한다. 이번 <모든 것과 아무것도>(2017)에서 선보이는 동명의 작품은 가로형 캔버스를 사용하여 공간 전체를 숲의 풍경으로 둘러싼 대형 삼면화이다.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스케일에 대한 실험과 화면 외부의 현실을 인식하는 태도를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이는 본인의 그림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의 회화를 구성하는 요소들 사이에서 직,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의미들을 엮어내는 일과 맞물려 있다.

 

반복의 몽타주

전현선의 작업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던 ‘인물’과 ‘뿔’의 자리를 최근 삼각형이나 사각형, 직선과 색면 등이 대체하면서 조형의 근본 언어에 대한 탐구가 확대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번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화면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그림의 단위들이 과거의 스케치나 드로잉 또는 작품을 축소하여 옮겨온 것이라는 점이다. 낱장 스티커처럼 캔버스 위에 얹혀있는 이 그림 속 그림들은 그것이 과거로부터 소환됨으로써 입체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데, 여기서의 입체감이란 아이폰이 자동으로 분류해놓은 인물사진의 묶음이 지니는 두께 즉 상황에 따라 하나의 것이 수십 개가 되는 뉘앙스의 묶음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전현선은 이처럼 자기 이미지의 반복과 재배치를 통해 자신이 사용하는 낱말의 유의어를 확장시켜나간다.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은 이 과거의 그림들이 서로 간의 위계 없이 ‘캔버스 위’라는 동일선상에 놓이게 된다는 점인데 작가는 시간이나 거리의 개념이 화면 안에서는 애초에 무효였다는 것을 말하려는 듯, 과거의 그림들을 현재의 그림 사이로 불러들인다. 이러한 자기 반복은 보는 이에게는 어떤 인상으로서 작용하고, 작가에게는 과거의 그림과 현재의 그림 사이, 나아가 미래의 그림 사이의 좌표점을 설정하는 일이자, 단어로만 존재했던 말들을 완성된 문장으로 쌓아나가는 행위가 된다. 

 

변신하는 그림들

앞서 밝힌 것처럼 전현선은 이미지를 수집한다. 그는 그리는 대상에 대한 몰입을 배재하기 위해 그리고자 하는 소재가 생기면 이미지를 통해 재현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오직 재현만을 위한 수집은 아닐지라도 그는 작업을 위해 많은 이미지를 찾아내고, 간직하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보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이렇게 모아둔 이미지들 가운데 잘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골라 책가도와 같은 진열장 형태를 빌려 그림 속의 작은 전시를 만든다. 구체적인 예로 이번 전시의 삼면화 중 오른 편의 <모든 것과 아무것도-원래는 하나의 점이었던 두 개의 세계>(2017)를 보면 화면 양쪽으로 무게중심이 되는 진열장 형식의 두 구조물이 놓여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여러 가지 사물들이 놓여있는데, 이 사물들은 맞은편 구조물의 그것과 서로 느슨한 대응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한쪽에서는 불빛이었던 것이 다른 쪽으로 이동하면서 노란색 종이로 치환되는 식이다. 

 

호기심이 생기는 부분은 처음 진열장에서 경직되어있던 사물들이 이동하면서 부유한다는 점이다. 원근의 세계에서도 결국 일직선상에 있던 사물들은 작가가 설정한 치환을 경험하며 형태가 변신함은 물론, 사물의 거리감 자체가 상관 없어진 것처럼 자유롭다. 시야를 좀 더 넓혀서 이 치환을 바라본다면 이것이 사물들 사이에서만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삼면화의 화면에서 맞은편 그림과 분할선이 우연히 이어져 있다든가, 동그란 창이 거울처럼 마주 보고 있는 등 큰 골격에서도 유효하게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시판에 붙어있는 전단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결국 하나의 판위에 있는 것처럼, 전현선은 화면에 여러 가지 요소를 배치하고 서로 간의 포물선을 그릴 수 있도록, 그래서 그것이 결과적으로 어떤 거대한 풍경을 이루기를 기대한다. 

 

솟아나는 숲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전현선의 <모든 것과 아무것도>는 우리를 그림 앞에 불러놓고 사실은 이것이 발밑의 늪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는 검은색과 형광색은 서로 반대편 컬러 차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곁에, 혹은 등을 맞대고 있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스스로 시작하는 지점과 끝나는 지점을 설정하고 건축가처럼 그림을 화면 안에 배치하는 수행적인 행위를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양극을 이야기하면서도, 그의 회화는 굳건하게 우리 앞에 서 있다. 결국 그림은 전현선에게 현실과 이상을 점유하는 (모든) 것이거나 그러면서도 등 뒤에 있어 눈앞에 보이지 않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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