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 혹은 간극의 상상력

윤동희(북노마드 대표)

그리는 자가 무언가를 그림의 주제로 삼을 때, 그 주제의 본질은 자신이 채집한 세상을 인식하는 과정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데 있다. 그리는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세상의 어떤 풍경을 미술작품으로 만들어주는 요소를 찾아내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지점을 포착하여 미술적 요소들, 그러니까 그리는 자의 마음에 유독 사무치는 고유한 리듬과 서사성을 특수한 구성과 이미지로 옮기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것에 ‘예술성’을 부여해 ‘미술작품’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그리는 자는 원어()를 다른 언어로 변환시켜 새로운 예술성을 자아내는 번역가와 같다. 번역은 나의 문자로 타자()의 문자의 가장 깊은 저변을 파헤치는 작업이자, 나의 문장으로 타자의 문장의 가장 조밀한 조직을 길어 올리는 실험이라고 했다. 번역가 조재룡의 말이다. 하나의 고유한 문장은 누가 번역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원어 혹은 원문을 이해하는 풍부한 지식과 시대와 장소의 낯섦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수성과 정확한 판단력이 잉태한 번역을 좋은 번역이라고 한다. 본래의 문장도 중요하지만, ‘누가’ 번역하느냐가 중요한 까닭이다. 그건 그림도 마찬가지여서, 그리는 자의 특수성이 세상의 물질과 정신을 이미지로 옮기는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하나의 고유한 세상은 누가 그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리는 자의 시선은 시대를 인식하고, 그것은 결국 자신을 바라보는 역사로 되돌아온다. 그리는 자는 미술과 현실의 경계를 걷는 존재이다. 그리는 자가 그려내는 이미지의 풍경은 현실과 멀지 않되 가까워서도 안 된다. 그 사이 혹은 간극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리는 자의 상상력이다. 그것이 세상을 이미지로 옮기는 자들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이다.

 

한 편의 동화를 써 내려가는 듯한 서사와 라이프치히를 중심으로 한 독일식 회화에 대한 감성이 느껴지는 전현선의 그림은 근자에 떠도는 젊은 작가들의 그림 가운데 단연 눈에 띈다. 전현선의 그림은 그리는 자가 몰두하는 낯선 세계를 상상하는 데 회화적 재능이 오롯이 사용된다는 것, 지리멸렬하지 않은 신선한 풍경을 그려낸다는 것, 그러면서도 감정의 부동한 균형을 잃지 않는다는 데 그 미덕이 있다.

 

사랑은 마음으로 감지하게 된 시간과 공간이라고 했다. 프루스트의 말이다. 전현선의 그림이 자꾸만 보고 싶어지는 이유는 그가 사랑의 마음으로 시간과 공간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이해하고 해석하기보다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되는 그림이 좋은 그림이라고 한다면, 전현선의 그림은 그 기준의 자리에 서 있다. 가급적 아직 채집되지 않은, 너무나 작고 눈에 띄지 않는 현실의 왜소한 풍경을 조신한 몸가짐으로 대하는 그에게 나는 믿음이 간다. 전현선의 그림은 또 다른 그림이 될 것이다. 그렇게 그는 또 다른 그리는 자가 되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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