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산
 

이름 없는 산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산이 있다. 이름이 없는 것인지, 여러 개의 이름으로 불려왔던 것인지. 언제부턴가 나는 이름도 없는 그 산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것만이 내가 산을 앞에 두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이유 없이 그곳에 있는 산, 그리고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내가 나란히 서 있었다. 
 

산이 된 뿔

 

이름 없는 산은 원래 뿔이었다.   

처음 뿔의 등장은 우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뿔보다는 그것을 둘러싼 주변의 상황을 더욱 자세하고 명확히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뿔은 굳건하기보다는 무게가 가벼운 존재였다. 책상 위에 놓아두고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이었던 뿔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결국, 산이 되어버렸다. 옮길 수 없는, 잊을 수 없는, 사라지지 않는 산.
 

그림 속 그림

그림들은 서로를 바라본다.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라고 믿기 때문에, 상대의 얼굴이 자신의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그림들은 서로의 모습을 (교차적으로) 반영하며 더욱 복잡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캔버스 화면에 모인 크고 작은 그림들은 다른 어떤 그림들-이전에 그려진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 그림들은 또 다른 그림들을 전제한다. 이렇게 그림들은 계속 이어지고 이어져서 끝이 없어진다. 시작점에서 출발하여 점점 포물선을 그리며 멀어지는 듯 하지만 하나의 궤도를 그리며 회전할 뿐이다.  
 

그림이라는 메모

 

현재의 판단들과 잠정적인 결론들은 순간적이고 번쩍여서, 쉽게 잊혀진다. 흐르는 물 위에 지은 집처럼 불안해서 금세 떠내려가 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림 속에서는 그 모든 것이 (잠시라도) 정착할 수 있다. 이해된 것보다는 이해되지 않은 것들이 받아들여진다. 보류된 확신 또한 그림 속에 자리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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