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과 아무것도
 

이것과 저것, 그리고 그것을 구분하는 기준과 판단에 항상 의심을 품고 있다. 이것과 저것이 다르다고 말할 때 과연 얼마만큼이나 확신에 찰 수 있을까? 언젠가 이것은 저것이 될 수 있고 이것은 저것과 그것이기도 한것이 아닐까. 이렇게 구분 점을 흐트러뜨리는 일을 그림 안에서 시도해나가고 싶다. 화면 위에 명확하게 잡히는(읽히는) 상황을 묘사하기보다, 구분 기준과 판단력이 사라져 뒤엉키는 늪을 만들어가려고 한다. 이 늪은 언뜻 보면 굳건하게 서 있는 나무들로 가득 찬 숲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무너져 내리는 늪이다. 화면을 이루는 요소들은 단정하고 정갈한 형상을 입고 있지만, 희미한 맥락으로 아슬아슬하게 앞과 뒤, 양옆을 지지하고 있다. 나는 요소 하나하나가 지닌 의미를 부각하기보다 요소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간신히 어떤 상황을 암시하도록 만들어가고 싶다.  

쓰러진 흰 나무와 숲

원래는 하나의 점이었던 두 개의 세계

안과 밖, 가깝고(도) 먼

 

<모든 것과 아무것도> 전시를 준비하면서, 연결된 듯 독립된 듯한 세 개의 화면을 만들고 싶었다. 전시장에서 마주 보며 서로를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화면들.

먼저, 어떤 숲을 상상했다. 길고 굵은 흰 나무가 쓰러져 누워있고, 그 주변을 둘러싸고 서 있는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수직과 수평이 교차하는 곳에서 조각난 시작점들이 흩어져있다. 시작점들은 연결점 혹은 교차점이기도 하다. 이 조각들은 화면 속에서 계속 이곳저곳으로 손을 뻗치고 있다. 그리고 화면에 여러 가지 나무들을 수직으로 곧게 심을 때, 나무와 나무 사이의 공간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화면에서 숲은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차곡차곡 쌓인 평면으로서만 존재하길 바랐다.

그다음에는 나란한 기찻길과 동전의 양면 같은 것들을 떠올렸다. 등을 맞대고 있는 두 사람처럼 서로를 느끼지만, 결코 마주 볼 수 없는 양면을 생각했다. 이런 양면을 평면 위에 그리려면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원래는 하나의 점에서 출발한 서로 다른 방향의 길, 같은 곳에서 출발해서 도착한 전혀 다른 장소 두 개를 화면 위에 놓아둔다. 하나의 점이, 전혀 다른 두 개의 세계가 되는 동안 어떤 작은 변화들이 일어났을까. 원뿔과 다각형이 앉아있는 구조물 두 개가 화면 양 옆에 주인공처럼 서 있다. 두 개의 구조물을 그릴 때 서로 일대일 대응이 되지 않는 혼란스러움과 긴장감이 둘 사이에 흐르길 원했다. 그 뒤로는 풍경이 점진적으로 펼쳐지고, 위로는 일정한 타임라인이 흘러가도록 놓아두었다. 가로로 긴 화면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되는 연속적인 장면이기도 하고 동시에 가만히 서서 바라본 눈앞의 풍경이기도 하다. [안과 밖, 가깝고(도) 먼]은 벽을 앞에 두고 이곳이 안인지 밖인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여기는 안 또는 밖이 아니라 안쪽인 동시에 바깥쪽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나를 상상했다. 서로 다른 쪽에 놓인 사물들은 벽을 사이에 두었지만 아주 가깝에 맞닿아있다. 그것들은 벽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사라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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